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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아바이 마을, ‘아바이’라는 생소한 낱말은 함경도 사투리입니다. 1.4 후퇴 당시 국군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온 함경도 일대의 피난민들이 전쟁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갈 길이 없게 되자, 휴전선에서 가까운 바닷가 허허벌판에 집을 짓고 살게 됐습니다. 이후 함경도 출신 가운데서도 특히 나이든 사람들이 많아, 함경도 사투리인 할아버지의 함경도 방언 ‘아바이’를 따서 아바이마을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죠.

속초아바이마을
속초 아바이마을에는 마을 사람들의 삶을 기록한 벽화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속초아바이마을
고향가는 날, 실향민들은 평생 그 날을 꿈꾸며 살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고향을 떠나는 시대이지만 언제든 맘 먹으면 고향에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바이 마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났고, 다시는 고향에 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지닌 사무친 그리움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세월이 지나 1세대 대부분은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 후손들이 속초시 청호동 일대 마을을 아바이 벽화마을로 단장하여 당시의 생활상을 전하고 있습니다.

“ 며칠만 피난 나와 있으면 되겠다 싶어서 내려왔지”

속초에 정착한 피난민들은 전쟁이 끝나면 곧 바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임시로 지낼 집을 지었습니다. 주로 군용 폐기물(씨레이션박스)을 이용하여 방과 부엌이 있는 형태의 집을 만들었는데요, 단천마을, 홍원마을, 신포마을, 신창마을, 영흥마을 등 출신 고향 마을 별로 모여살았다고 합니다. 모래사장이라 집을 짓기도 어렵고 먹을 물도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잠시 지낼거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것이 수십년이 훌쩍 흘러버렸습니다.

속초아바이마을
당시의 움막집의 형태입니다. 잠시 머물 거라 생각하고 지은 집이었습니다
속초아바이마을
실향민들은 고향에서 살던 마을 단위로 모여 살았습니다.

“난 며칠만 있으면 되겠다 싶어 아군들 따라 남하했지.

그 이후로 이북의 가족 소식은 들을래야 들을 수도 없었어. 생각하면 속만 상하지”

_ 아바이마을 김형준 할아버지

아바이들의 기대와 달리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닫히고 말았습니다. 전쟁으로 가족과 친지와 헤어져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고달팠을까요? 아바이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막노동, 고기잡이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여성들은 ‘함경도 또순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아바이 마을 담벼락에는 척박한 조건 속에서 열심히 살아온 이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속초아바이마을
속초아바이마을
"12살 때 피난와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추억의 보따리, 희망의 보따리

​아바이 마을의 주요 상징물 가운데 하나는 보따리입니다. 피난길에 힘겹게 싸고 온 보따리, 낯선 땅에서 살아가면서 이고지고 나른 보따리, 언젠가 돌아가고 싶다는 희망을 함께 동여맨 보따리 들입니다. 아바이 마을 골목길을 걷다보면 만나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실향민의 아픔과 분단의 아픔, 전쟁이 남긴 상처에 대해서도 귀 기울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속초아바이마을
속초아바이마을
속초아바이마을

“ 누구나 자신만의 보따리 하나 쯤 있지 난리통에 떠나온 고향의 추억보따리

고향 그리운 마음 동여매고 열심히 살아보게 만든 희망보따리”

_ 아바이마을 벽화의 글 중에서

실향민의 음식문화가 만든 속초의 맛

속초에는 실향민의 음식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함흥냉면, 명태순대, 가자미식해, 명태식해, 가리국밥 오징어순대 등 다양합니다. 한국전쟁 이후 월남한 실향민들이 고향 함경도에서 해먹던 식해문화를 속초에서 재현하면서 남한에서도 식해문화가 가장 발달한 지역이 됐습니다. 속초에 오시면 속초만의 특색이 담긴 음식들을 꼭 한번 드셔보셔요.

속초아바이마을
속초아바이마을
속초의 명물 가리국과 오징어 순대. 실향민 덕분에 속초의 음식은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속초,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속초는 최근 평창올림픽과 수도권과 이어지는 고속도로 개통으로 주목받는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해변과 이색적인 카페, 다양한 먹거리의 도시 덕분에 많은 이들이 찾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속초시, 하지만 우리 근대사의 아픔이 담겨있고, 아바이마을은 그 대표적인 장소입니다. 지금은 큰 도시가 된 속초시의 시작은 월남한 피난민들임을 다음의 자료에서 발견됩니다.

1930년대 동해안의 수산업 항구로 개발되어 도시가 처음 형성되었던 속초시는

한국전쟁 후 유입된 월남 실향민들의 정착으로 동해안의 대표적인 수산도시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실향민의 유입은 속초시가 시로 승격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속초시는 1963년 전국에서 26번째 시로 승격하였다. 승격 당시 속초시의 인구는 5만5천명으로 시의 인구 하한선에 모자랐지만 정책적 배려로 초미니 시가 되었다. 해방 후 이남 지역이었다가 한국전쟁 후 북한에 편입된 북한의 개성시는 1955년 직할시가 된 만큼 북한 치하에 있다 한국전쟁으로 수복된 속초지역에 대한 배려가 앞섰다.

_ 엄경선, 실향민의 도시 속초이야기 중에서

속초아바이마을
속초아바이마을
고운 옷 입고 고향 가는 길, 언제일까요?

고운 옷 입고 고향가는 길, 언제일까요?

속초는 한국전쟁 이전에는 북한 땅이었습니다. 이후 정전협정으로 남한 땅이 되었습니다. 남과 북이 밀리고 쫓기는 전쟁을 치르는 동안 피난을 오가다 뜻하지 않게 실향민이 되어버린 이들이 많습니다. 속초의 실향민들은 고향의 가족 친지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자신만이 내려왔다는 미안함이 공존합니다. 통일에대한 염원도 강하지만 반공에 대한 강한 의지가 함께 나타납니다. 1985년 이산가족 첫 상봉이 이루어졌지만 2009년까지 아바이 마을에서는 상봉자가 1명도 안나왔습니다. 속초의 실향민들이 얼마나 조심스러워 하는 지를 볼 수 있는 한 예 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마지막 분단국입니다. 속초 아바이마을 골목길에는 분단의 아픔, 이산의 아픔, 전쟁의 상처를 겪은 이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골목길을 걸으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세요. 고향을 그리는 마음으로 평생 살아온 이들의 삶을 기억해 주세요.

아마이, 우리가 고향 가는 그 날이 올까?

네, 그 날이 꼭 와야지요.




아바이마을을 걸어보세요

● 코스1
고속버스터미널 하차 → 속초해수욕장 → 아바이마을 해안길 → 아바이마을 구도로 → 아트플랫폼 갯배 → 엘리베이터 → 설악대교 엘리베이터 → 아바이마을(신포마을) → 갯배 → 속초관광수산시장

● 코스2
시외버스터미널 하차 → 속초시내 갯배입구 → 갯배 → 아바이마을(신포마을) → 엘리베이터 → 설악대교 → 엘리베이터 → 아트플랫폼 갯배 → 아바이마을 구도로 → 아바이마을 해안길 → 속초해수욕장 → 고속버스터미널 *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속초관광수산시장까지 걸어서 이동한 후 갯배를 타고 아바이마을로 가도 됩니다.


자료출처

● 엄경선(설악신문 전문기자). 동해접경지 분단의 아픔 ‘실향민 이야기’

● 속초 아바이마을 홈페이지 http://www.abai.co.kr/home/

● 아바이 벽화 골목 아카이브


속초 아바이마을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속초 아바이마을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www.abai.co.kr/home/


강원피스투어는 여행을 통해 접경지역 마을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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